고통.
처음 느낀것은 장렬한 고통이었다. 비단 육체의 고통만이 아닌, 가시박힌 손아귀가 뇌를 꽉 쥐어짜는 듯한 정신적 고통이 막 정신이 들려하는 그를 괴롭혔다.
'이게 무슨일이지?'
고통.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어째서 이토록 희뿌연건지 예상할 틈도 없이 폭포처럼 밀고들어오는 노이즈가 맨정신을 흔들어댔다. 분명 지금 자신은 손가락 끝이 심각하게 떨리고있을것이다. 아니, 온 몸이 떨리고있을것이다. 그는 어떻게던 정신을 다잡으려 노력하고 육신의 경련을 잠재우고자 힘을 다했지만 도통 부족한건지 그 어느것하나 나아지지않았다. 다 부질없는짓인것같았다. 부디 시간이 이 고통을 해소할수있다면...
하지만 그것은 바램으로 그쳤다.
고통은 나아지지않았다. 단지 점점 익숙해져갈뿐.
아스틴. 고통이 스며들며 모든게 점차 뚜렷해져간다. 아우덴티아 아스틴. 자신의 이름. 그는 자신의 상태라는것을 전혀 깨닫지 못한것처럼 숨을 헐떡였다. 숨쉬는 몸이었다면 땀으로 범벅이 되어있었을게 분명했지만 그는 더이상 그런 익숙한 상황을 맞이하지못하는 몸이 되어있었다. 노스렌드의 서린 바람에 오랫동안 노출되어있어도 전혀 변하지않는 창백한 피부는 수분이라고는 없어보였고 빛을 받으면 그 무엇보다 밝아졌던 호박빛의 머리카락은 어느새 희게 새어 으스스한 느낌마저 주었다. 머리카락의 끝에 겨우 남겨진 주홍빛만이 그 생전의 색을 유추할수있게 해주었지만 너무도 무딘색이라 생전의 생기는 전혀 찾을수없어 이것을 보고 정체를 알아차리는건 불가능해보였다. 그리고
'아윽..!!!'
가까스로 보이게된 자신의 양 손바닥을 쳐다보던 아스틴은 갑자기 닥쳐온 또다른 고통에 신음했다. 하지만 그 고통은 왠지모르게 익숙했다. 그렇게 오래되지만은 않은 고통. 하지만 깊디깊은 고통이 겨우 참고있던 정신을 다시금 놓게만들뻔했다. 휘어잡은 정신속에서도 아스틴은 이 고통을 알고있었다. 처절하게 느꼈다. 그 고통이 무엇인지 떠올랐을때 그의 눈이 커졌다. 그는 자신의 두 손이 아직도 떨림에도 불구하고 다급히 가슴께의 갑주를 벗겨내었다. 생전의 모양을 간직한 창백한 피부가 드러났고 별 다를건 없어보였다. 심장이 있어야 하는 가슴팍에 나있는 검은 공허가 아니었다면.
'아... 아아.... !!'
공포가 엄습했다. 육체적 고통은 잊어버릴정도로. 아스틴은 제 심장께를 붙잡았다. 아무것도 느껴지지않았다. 살아있다면 그럴수없는 일이었다. 그의 주변, 모든게 멈추었다.
자신은 죽었다.
죽음을 두른 기사의 칼에.
심장을 빼앗겼다.
그를 괴롭히는 것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 사실은 다른 사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일이었다. 심각한 불안감에 떨고있던 아스틴은 그 원흉일 일 따위는 떠올리고싶지않았지만 야속하게도 기억의 회복은 매우 빨랐고, 그가 원하던 원하지않던, 모든 진실이 그에게 던져넣어졌다. 새하얀 머리카락을 두 손으로 부여잡으며 아스틴은 오열했다. 자신이 저지른 모든것이 그를 나락으로 잡아끌었다. 스쳐지나가는-
'약속하도록하지.'
'아아아..'
'내 명령을 제대로 수행한다면 네 가족을 보게해주겠다.'
저주받은 능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