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증이 있긴 했다. 어머니, '아이샤 혼더스트'가 보았던 어둠의 마왕은 대체 얼마나 강대한 힘과 지식을 지녔기에, 그에게 미칠정도의 확신을 가지게 만들었던것일까. 남아있는 흔적이라고는 이름조차 부르면 안된다는 공포심과 침묵뿐. 그가 이용했다는 '저주받은 마법'들의 설명은 흥미로웠지만, 이것만으로 '죽음을 정복'할 수 있는 자라는 증명이 되진 못할듯 싶었다. 누군가에게 패퇴당하였다는 진실이 있기에, 지금처럼 기억속에서만 살고있는 것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그 자가 부활하면 어떻게 되는것인가, 하는 실체없는 상상은 계속되었다. 교내의 수상한 흔적들이 아니어도, 마법세계는 그의 일이라면 화들짝 놀라서는 신속하게 움직이곤 했다. 그의 위험한 호기심을 사정없이 자극하는 반응들. '모두를 두려움에 떨게 만든 자'. 이 마왕이라는 자는 그의 흥미를 충족할 정도의 인물인것일까...? 혼더스트가 미쳐 따를정도의 힘을 구사하는 자일까...? 확실히, 죽음을 초월한다는 것은 허언처럼 다가왔지만, 세상에는 보이는것 이상의 물건이 많다는걸 알고있는 그로서는 흥미가 동할 수 밖에 없었다. 선택에 영향을 끼칠만한, 마왕의 비인도적인 행보따위는 덱스터에게 큰 충격을 주지못했다.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치 못하는 정신. 그렇기에 덱스터의 선택역시 지극히 비도덕적이며, 다분히 충동적인 편이었다. 그나마 결단에 있어 언제나 제 이득을 먼저 판단하는 점 정도가 브레이크 역할을 해주었다고 할까.
덱스터에게 승자가 되기 위해 선택을 하는 삶을 살고있노라고 묻는다면, 그는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는 제 자유를 위해서 살고있다고 말하는 자이며, 필요로 인해 움직이고, 거쳐야만 한다면 그 어떠한 시련이라도 감내할 준비가 되었다고 스스로 굳게 믿는 이였다. 가문에서 동떨어진지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유년의 고통이 참을 수 있을만한 것이 되었을때, 그는 저도모르게 제 선택을 과신하고 있었다.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보내는 시간은 그에게서 날카로운 감각을 앗아가고, 손에 잡힐듯한 희망은 경계심을 무뎌지게 해, 순간의 방심을 유도했다. 그가 승리를 통해 얻을 수 있는것에 관심이 없어도, 패배를 통해 지게 될 리스크가 있었고, 그로부터 상정치못한 대가를 치르게 될것임을 아직 그는 몰랐다. 정말 몰랐다.
그 많았던 의미심장한 쪽지들과 사건들. 한조각 한조각 맞추어지며 윤곽을 드러낸 것은 제 어미가 그와 동생보다 아낄만한 진실이었다. '어둠의 마왕'을 되살리기 위한 수단. 기이한 흔적들이 향한곳이 이곳이었다. 콘클라베의 클라이막스.
파티가 갑작스러운 난장판이 되는것에는 오래걸리지 않았다. 이 대회는 명확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함정인것이 그때 드러난다. '어둠의 마왕'을 부활시키기 위한 유례없는 기회로서. 사실을 깨달은 자들끼리 눈빛이 오가고, 그는 그 틈에서 혼란과 과거, 현재를 보았다. 그리고 결단도. 부활장치 앞에서 서로의 뜻을 바로 알아채지 못해 대립하던것도 잠시, 어둠의 마왕이 되살아나는것을 선택한 이들과 저지하는 입장에 선 이들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양측 모두에게 돌발적인 상황이었다. 제대로된 태세정비도 하지못한채 맞부딪친 마법들이 사방팔방을 파괴하고 재구성한다. 전장의 한구석을 차지한 그 역시 거센 마법들 사이를 피하고 대처하기 바빴다.
'제길, 좀 더 기민하게 반응했어야 했는데.'
중앙에 나오기 이전, 바닥에서 갑작스레 튀어오른 가시무더기에 오른다리의 절반 가까이가 크게 베여, 꽤 많은 피를 흘린 그였다. 급한 처치를 했다고 해도 자극적인 통증은 대회 내내 계속되었고, 아무리 고통을 잘 견뎌내는 그라도, 싸움통이 된 지금에 와선 다리의 중상이 거슬리지 않을 수 가 없었다. 콘클라베를 성대한 축제처럼 포장해 놓고서는 학생에게 이런 함정을 안배하다니. 학교의 위선적인 면들을 곱씹다가도, '힘'의 필요성을 체감하게 되는게 작금의 상황이었다. 덱스터의 붉은눈이 위협적으로 번뜩거렸다. 평소같았다면 좀 더 빠르게 움직였을터인데 중상의 다리가 제 움직임을 크게 제약하는 통에, 그는 저에게 날아온 공격마법을 그대로 맞고 나뒹굴었다. 손에 쥔 지팡이를 결코 놓치지는 않고, 힘겹게 고개를 치켜든 그는 이윽고 드센 불빛과 함께 난데없이 참전한 각 파벌의 교수들을 흘긋거렸다. 덱스터는 또다시 여럿의 생각을 넘나들었다. 교수들-. 저들을 이곳으로 향하게 한 주역들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대치하며, 각자의 목소리를 드높였다. '배신자들! 죽음을 먹는 자가 아직도 남아있었던건가! 어둠의 잔당들!' 아아, 시끄러웠다. 이게 뭐라고 저렇게 다들 소리지르는건지. 뻔뻔하지만 그로서는 당연한 생각을 하며, 덱스터는 몸을 추슬렀다. 반대쪽에 대치한 교수진과, 저들의 앞을 비호하듯 서있는 교수진. 흘긋 바라본 제 앞에는 마법의 역사 담당의 프레디교수가 공중에서 지팡이를 휘두르고 있었다. 저를 향한 시선을 알고있는것인지, 덱스터가 몸을 세우자마자 그에게 언질하듯 나온 말은 설마 당장 들을거라고 생각치도 못한것이었다.
'멤브로크 가문이 바로 바깥에서 기다리고있네. 덱스터 학생.'
".....!!!"
이리도 가까이. 살짝 놀라움이 깃들려다가도, 제 가문이 이 '죽음을 먹는 자'들과 내통하고 있었을거라는 생각에 닿은 순간, 이해가 되었다. 동시에 수많은 불안과 불확신이 속을 어둡게 틀어막았다. 그가 어느정도 우려한대로, 교내에도 그들의 정보통이 있던것이다. 대체 어디까지 노출되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현 상황이 모든걸 물거품으로 만들었다는 사실만이 현실이다. 막을 수 없는 흐름은, 지금 뚫리지 않았더라도, 분명 졸업 직후에 저를 휩쓸었으리라. 맞부딪치는 공격들과 점점 밀리기 시작하는 전선. 뿔뿔이 흩어진 '약속'. 그는 이제 부상까지 입고서 고립되었다. 두 손이 꽉 쥐어졌다. 그는 일단 '살아남아야' 했다. 어떻게? 패배당한 전선에서 급히 후퇴하며, 빠져나갈 다른 수단을 급하게 궁리하는지 선뜻 결단내리지 못하고있는 덱스터를 내려다 보던 프레디 교수가 이은 말을 꺼내들었다. 터져나가는 마법들의 소음 속에서도 그 말은 선명했다.
'덱스터 군.'
유령의 말은 서늘했다. 또한 익숙했다. 꽤나 오랜시간을 들어오지 않았던가.
'자네는 정말 멤브로크와 잘 어울리는 학생이었다네. 자랑스러운 순혈의 가능성을 내, 이 눈으로 보았지.'
그 말이 덱스터의 심기를 완전히 거슬렀다. 어째 모두가 저를 그들과 동일시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가 없다. 제가 하는 모든것의 근원은 가문에 기반한다는듯이. 은근한 감시 속에서도 볼 수 없었던 흉악한 표정이 저를 향함에도, 프레디 교수는 껄껄 웃을뿐이다. 그와 접선해온 '멤브로크'의 인물들도 저런 눈을 하고있었다. 거슬리는것은 앞에서 전부 치워버릴 생각으로 가득찬 눈들. 그들의 눈을 마주해 본 자라면, 그 누구도 '멤브로크'와 다른 가문을 착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덱스터 멤브로크'도 똑같은 감상을 주었다. 유령의 붉고 흰 머리카락이 흔들리고, 추격자의 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프레디 교수는 덱스터에게 한 방향을 가리켰다. 어둠너머의 건너편을. 어울리지않는 숭고함마저 품고서.
'순혈 마법사들을 위한 세상을!'
그런 말을 끝마친 프레디 교수는 빠르게 몸을 움직여 추격자와 정면으로 마주하는 방향으로 사라졌다. 그 길에 우두커니 남은것은 페룰라따위로 오른다리의 부상을 무시하고있는 본인 뿐이었다. 그는 움직여야했다. 중앙에서의 싸움으로 오랜만에 고통받은 그는 제 감각이 무뎌졌음을 느리게 인정해야만 했다. 대회 이전부터 어느정도 꿍꿍이가 있을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이런 대사건이 펼쳐질 줄은 상정하지 못하고있던 그이기에 충격은 막대했다.
"..."
'자유'. 사실 그는 그 개념을 지극히 주관적인 의미로서 가지고있었다. 그저 '바깥의 세계.' '새로운 것.' 따위의 '상상'으로 말이다. 가져본적 없는것은 정체된 이미지로만 뇌리에 남겨있었다. 무언가가 있을거야. 라는 막연한 기대. 어린 동심의 연장선.
하지만 가문 밖의 세계가 상상이 아닌 현실로 그에게 도래하면서, 가문의 말들이 아예 틀린건 아니었음을 깨닫게 해주는 증거가 되기도 했다. 반드시 거치는 '의심'과 '두려움'의 눈길은 속을 들여다 볼 필요도 없었다. 머글출신이 아닌 어린 학생들은 대부분 그의 앞에서 우왕좌왕거리기 마련이었다. 범죄자로 이루어진 가문이라는 이미지, 절대적인 경험의 부족이 만들어내는 투명한 행동들. 덱스터는 그런 학생들을 그저 무심히 흘려보냈다고 여겼지만, 무의식의 기저에는 '약한' 이들을 가려내는 선별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런 본능에도 불구하고, 학교라는 사회환경에 끊임없이 영향을받아 조금은 부드러워진 일면이 그에게 감히 더한 희망을 생각하게 했다. 이 '멤브로크'라는 성이 가진 뜻이 마음에 들지않는다면, 저가 '멤브로크'의 이름을 다시 쓰겠노라는 야망. 어느순간부터 엇나가버린 가문의 '명예'라는것을 저부터 다시 만들면 되지않을까 하며. 궁극적으로는 제 편안한 삶을 위해서였지만 말이다. 하지만 지금, 그의 동심어린 야망이 녹아든 미래의 청사진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지금 그는 끝이 보이지않는 길을 부상입은채 내달리고있었다. 단 한순간의 선택으로.
혼란스러운 도망길, 한발 한발의 치욕을 눌러 참는 그는 앞으로의 계획을 다시 생각해야했다.
새삼스럽진 않았다. 제 삶에선 쉽게 얻은 것을 찾는게 아닌걸 찾기보다 어려웠다. 다만, 그런 노력의 연장선이 너무 길어지는것에 짜증이 솟구쳤다. 그 외에도, 제 가문을 이상태로 마주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니-.
'어디로 가야,,,'
모두가 흩어졌다. 저와 약조를 나누었던 이들마저도, 생사조차 명확히 알 수 없게 되어버린 상황에 마른침이 절로 넘어간다. 당장 자신부터도, 무력하기 짝이 없었다. 빌어먹을 콘클라베. 아랫입술을 꾹 깨문 그는 미로를 헤치고 나와 넓은 학교의 바깥으로 빠르게 걸음했다. 아치형의 다리의 초반, 그의 오른발 아래로 붉은 자국이 띄엄띄엄 자국처럼 남았다. 다리의 중반, 아주 오랫동안 느끼지 못했던 쎄함을 느낀다. 다리의 후반, 덱스터는 걸음을 천천히 멈추었다. 건너기 전까지는 혼자였으나, 그 끝에 다다르자 더이상 혼자가 아니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진득하게 따라붙는 시선이 있었다. 그리고 그 주인은 상대를 인식하자마자 기다렸다는듯 빠르게 모습을 드러내었다.
"형!"
"케일,,,?"
그는 갑작스러운 상황에도 동생을 보게된것에 안도하는 자신을 알수있었다. 이 사태에서 유일하게 저를 기다려줄 사람이 있다면, 그래. 제 동생밖에 없는것이다. 저의 가장 가까운 이해자-. 세차게 뛰는 감정에 '다리를 다쳤구나.' 동생의 눈을 실수로 바라보고 만 그는 자연스레 흘러들어오는 상대의 생각을 자각하자마자 눈을 내렸다. 확실히 저는 궁지에 몰려있었다고, 다시금 되새김하면서 말이다. 아주 오랜만에 보게된 동생의 생각은 저에 대한 걱정인것에 긴장이 조금 풀린 그는 살짝 웃음지었다. 그럴 상황이 아님에도 무심코.
".. 이럴 시간이 없어, 우린 빠져나가야해. 방법이 있는거지?"
평소답지않게 흐트러진 모습으로, 그는 제 동생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케일렌은 밝게 웃어보였다. 대답하기를 기다렸다는듯이.
"내가 길을 알아, 형. 이제 가자."
말을 더할 필요도 없었다. 덱스터는 저를 흘긋이다 앞장서는 케일렌의 뒷모습을 올려다보며 말없이 그 뒤를 따랐다. 아무런 희망도 없을줄 알았는데. 이렇게 빛은 다시 그에게 찾아왔다. 덱스터는 고양되는 감정(안정감과 비슷한것)을 추스르고 고통을 호소하는 오른다리를 끝까지 움직여나갔다. 덱스터는 바깥에서의 삶이 어찌될지 상상한다. 가문이 그와 동생 둘을 잃어버린다면 꼴이 볼만할 것 이다. 후대를 위해 저희 형제를, 나아가서 가문을 기만한 부모가 큰 책임을 물게 될 것이다. 그 모습을 바로 볼수없는건 좀 아쉬울 것이다. 가주의 자리를 이어받을 후손들을 한번에 잃은 가문이 어떤 선택을 내릴지를 궁금해 하던차, 동생은 어두워진 길을 어느정도 헤쳐나가는듯 하다가, 언덕 둔치에서 멈추어 섰다. 그리 멀리 나가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멈추어선 동생을 따라 그 역시 고통스러운 걸음을 멈춘다. 주변을 흘긋거려도 보이는건 어둠.
'왜 멈춘거지?'
케일렌이 저에게 몸을 돌리는 발치를 가만히 쳐다보던 덱스터는 실체를 드러내는 섬뜩함을 느꼈다. 오랫동안 잊고있었던 인기척들. 혼자서 받는 배신. 희망은 덧없이 지워지고 결국 '이해'따위는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명백함이 다시금 물위로 올라와, 불신과 좌절의 형태로 표정에 드러난다. 그리고 그는 기어코 마주한 동생의 눈 너머를 읽기도 전에 모든게 끝났음을 직감한다. '돌아가자, 형.'
'...이..!'
덱스터는 가쁜숨을 고르면서 제가 남긴 혈흔을 돌아보았다. 아니, 흔적은 없었다. 깔끔하게 지워진 흔적들. 추적을 어렵게 하기위한 처리인것을 바로 깨달음과 동시에 어둠너머로 제 지팡이가 순식간에 빼앗김을 느낀다. 무장해제 마법. 어느새. 주변에 그들이 있었다. 잊고있었던 인기척들-.
"케일ㄹ-!!"
덱스터의 노기어린 말이 그의 동생에게 쇄도하기도 전에, 그는 측면에서 온 기절마법의 충격으로 정신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한 순간에 나타난 그들은, 또한 한 순간에 사라져버린다. 남은것은 어둠에 가라앉은 정적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