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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프롬



"형, 이거 받아."

구석진 복도의 한켠에서 두 인영이 서로를 향하고 있었다. 한쪽은 반대에 비해서 주먹 하나정도 작은 키를 가지고 있는 그리핀도르의 학생이었고 그 반대에 서있는 자는 슬리데린의 반장임에도 항간의 소문들로 더욱 유명한 자였다. 형인 그는 동생이 내미는 옷가지를 조용히 내려보며 자주 보이지않는 노골적인 못마땅함을 드러내고 있던 참이다. 은은한 벽면의 불빛이 그의 버건디색 머리카락을 밝게 비추어주고 있었지만, 빛없이 가라앉아있는 눈동자의 색은 그의 반대에서 옷을 건네며 서있는 6학년을 당장에라도 꺼뜨릴것처럼 어둡기만 했다.

"또 갔다온거야. 거길?"

"형의 행동으로 걱정들 하시는데 나까지 안돌아가면 안된다는거 잘 알잖아."

동생의 대답에 그의 눈이 매섭게 올라간다. 시선이 벽을 향하고있어 특정된 상대가 없기에 망정이었지, 누군가 그 앞을 지나가기라도 한다면 반사적으로 기겁할만한 흉흉함이었다.

"그 자들이 너에게 거짓말을 하고있는거라고 계속 말했을텐데, 케일렌."

"알았어,알았어."

"전혀 못알아들었잖아. 진지하게 들으라고."

하나뿐인 형의 입에서 거칠게 제 이름이 불리워짐에도 케일렌은 형제 간 비슷한 미소를 지으며 어렵지않게 그에게 답했다. 덱스터는 동생의 금빛어린 흰머리카락이 시선 끝에 걸림으로서 그가 자신에게 한걸음 더 다가왔다는걸 알았다. 끈질긴 동생이 저에게 내미는 정장은 딱 보기에도 고가의 물건으로, 그 형태와 색깔이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물건임에 이견이 없었다. 그는 눈꺼풀 너머로 눈동자를 숨기거나 굴리며 동생의 품에 놓여있는 그것을 계속해서 무시했다. 속을 간질거리는 분노에 그 옷을 던져버리고 싶었으나, 미련한 동생이 굳이 다시 주워서 내밀것을 알기에 괜한 성질을 부리고자 하진 않는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이 심히 못마땅한것은 사실이라, 잔뜩 경직된채 제 동생을 비딱하게 마주하는것으로 불만을 대신 표출하고 있었다. 잠깐동안의 대치만으로도 형이 졸업파티에 별 관심이 없다는걸 파악한 케일렌은, 제가 들고 있는 옷이 주인을 찾아가기 위해선 재빠른 행동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프롬파티는 사교파티와 비슷한 모양이야. 형. 실전은 처음일테니 좀 더 설레여봐도 좋지않을까?"

"가식을 뽐내는 자리에 설레일 이유가 어디있어."

"해봐야 알지. 일단은 꾸미고 가는것부터."

그는 케일렌이 성큼 다가와 저에게 옷을 들려주는걸 막지못했다. 놀란 얼굴에 금방 미간이 찌푸려진다. 습관처럼 웃음을 유지하는 그의 얼굴을 이정도로 구기게 만들 수 있는건 케일렌이 유일했다. 이미 저의 진심을 알고있는 이에게는 숨길것이 없는것이다. 형에게 목적의 옷을 넘겼다는 것에 만족한것인지 그저 실실웃던 케일렌은 덱스터가 크게 반응하지 않자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언제나처럼 조심스럽게 말을 골라내어 남의 시선을 탐하던 때와는 다르게 동생의 입가만을 맴도는 덱스터의 시선은 결코 위를 향하지 않았다. 그것에 불만족한것인지 아니면 다른 생각이 있는것인지, 케일렌은 그의 앞에서 뜸들이다가 작게 말했다.

"한번쯤은 마주봐줘도 괜찮잖아. 파티 후면 또 보기 어려울텐데.."

눈을 마주보지않는것은 두 형제사이에 큰 의미를 가지고있었다. 적어도 덱스터는 그렇게 생각했다. 동생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수없지만 신경쓰고있음은 자명해 가끔 이렇게 자신의 시선을 언급하곤 하는것이다. 그것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항상 일관적이었고. 이번에도 다르지않았다.

"네 눈을 바라보지 않겠다는 내 약속은 아직도 유효해."

"..."

"널 다 믿지못하겠다 말했어도."

그러니 너도 약속을 지켜. 뒤를 이어야 했던 말은 목 끝에 걸렸다. 시선 너머로 진실을 얻어내는 그에게 있어서 말로 검증받는 신뢰는 어색하기 그지없으나 세간의 '평범함'을 체화하기 위해 필요한 수순이었다. 4학년에 겨우 동생과의 교류가 튼 그는, 동생의 입에서 나온 어처구니없는 이유에 감정이 상하고 더욱 고민이 깊어졌었다. 가문을 향하는 분노의 이유가 명확한 만큼이나, 그곳에서 동고동락한 형제가 저의 속을 알아주지 않는것이 상당한 스트레스였던 것이다. 어느정도 대화가 튼 6학년때 까지도, 동생이 자신의 이해자가 되어줄거라는 기대는 꾸준히 시험속에 던져졌다. 그럼에도 답지않은 희망을 잡고있는 이유는, 호그와트에서의 경험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주었기 때문이며, 그를 통해 저와 케일렌 또한 가문의 영향을 가혹하게 받았음을 이해하게 된 탓이다. 고작 10살 채 되지않은 어린아이가 할수있던게 뭐가 있을까. 남의 속을 보지못하는 케일렌에겐 더하면 더했지 적지는 않았을거라는 결론이 내려지는건 타인을 바라보는 관점이 매우 비뚜름한 그로서도 어렵지않게 얻을만한 답이었다. 그럼에도,

'꺾이지 않는 고집으로 그리핀도르가 된건가.'

고통을 함께한 형제가 아니었다면 이리 속이 타들어갈 일도 없었을거라고, 조용히 생각해보던 그는 이윽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형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개를 몇번 갸웃거리는것을 보면 후자일것이다.) 케일렌은 형이 대충 들고있는 옷위로 손을 올리며 독려해주듯 나즈막히 말했다. 그 어조가 신중하고 조심스러워, 무의식적으로 눈을 마주볼뻔한 덱스터는 당황한 모습을 바로 잡기위해 급히 고개를 돌렸다.

"학교에서의 마지막 파티, 즐겁게 보내. 형."

형의 행동에 작게 웃음소리를 흘린 케일렌이 그 말을 끝으로 한걸음씩 멀어져 간다. 그 발끝을 시작으로 완전한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덱스터는 잠시 그곳에 못박힌듯 서있다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동생의 말이 맞았다. 어찌되었건 곧 모든게 새로워질거야. 주위가 아무리 부산스러워도 시간의 흐름은 절대적이다. 졸업이, 곧이다. 그의 손이 저도 모르게 꽉 쥐어진다.

"그래. 이게 마지막이지."

그는 손에 들린 옷을 한번 더 바라보았다. 자신의 교복을 언제나 새로 가져와주던 사람은 한명 뿐이었으니, 이 옷 역시 케일렌의 의견이 들어갔을 확률이 높았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고민할 것도 되지 못했겠지만, 동생이 저를 생각하여 가져온 물건이 되니 마음이 유해져 버리는건 그로써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린시절의 영향이란, 지울수없는 인생의 토대로 존재한다는것을, 그는 자신의 경험으로 끝없이 증명받고 있으니까. 동생과 헤어진 후, 파티의 준비로 한창이고 또한 시작으로 들뜬 인파를 없는것처럼 지나 어두운 슬리데린의 지하로 발걸음을 하는 그를, 누구도 막아서려고 하지않았다. 이따금 저를 따라오는 시선들을 무시하면서 빠르게 걸음을 옮긴 덕이다. 초록빛의 조명과 깊은 물속의 스산함이 가득한 전용 기숙사에서 겨우 걸음을 멈춘 덱스터는, 몸에 잔뜩 들이던 힘을 슬슬 풀고 어깨를 내린다. 그로인해 손 안에 한아름 들려있던 옷도 밑으로 흘러내리며 가지런히 정돈되어있는 침구위에 안착했다. 몇가닥 내려온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침대 가장자리에 앉은 그는, 옆에 흩어져있는 붉고 검은기조의 정장을 바라본다. 테마가 '골드'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우연의 일치인지, 정장의 포인트가 되는 부분들은 흠 하나없는 황홀한 금빛을 뽐냈다. 쓸데없이 눈에 띄게 만들어 둔것에 누구의 의견이 들어갔는지 잘 알것같았다. 숙부인 '루퍼스 멤브로크'만이 가문에서 허레허식에 신경쓰는 유일한 사람이었으니까. 기분나쁜 얼굴을 기억해내곤 혀를 찬 덱스터는 그대로 상체를 뒤로 눕혀 침대에 퍼질러졌다. 연회장으로 향하는 인파의 부산스러운 소리가 반복되다 완전히 조용해진 기숙사에서 그는 프롬파티를 어떤식으로 보내야 할지 생각해본다. 답을 내기위한 시간은 오래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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