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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기 전
아직 겨울의 한기가 다 가시지않은 초봄. 주홍빛 머리카락을 흐트리며 거리로 나온 그는 초롱초롱한 눈을 빛내며 손을 그러쥐었다. 그날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언제나 걷던 스톰윈드의 깔끔한 거리 위를 지나가며 그는 자신을 알아보는 몇몇사람들에게 간단히 인사했다. 평소였으면 더 많은 대화를 나누었겠지만 아쉽게도 지금 그에게는 당장 하고싶은것이 있었다. 그를 알아보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갑옷을 걸치고있는 그의 새로운 모습에 잠시 넋이 나가기도했고 박수치며 응원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상업지구까지 지나 정문을 나서면서도 그의 얼굴에선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맑디맑은 햇살이 엘윈숲의 울창한 나무들 위로 쏟아지며 나뭇잎들 사이사이에 파고들어 이윽고 그 빛이 그의 호박색 머릿결 위에 올라탔다. 따스함을 눈치챈것인지 그가 살짝 고개를 올리고 깊은 숨을 들이마쉬었다. 얼마나 아름다운 날인가. 자주 입은것 같진 않아보이는 깨끗한 금과 흑빛의 갑주를 한번 갈무리한 그는 다시금 길 위를 걷기시작했다. 


"오늘도 수고하십니다."
"아우덴티아로군. 드디어 나서나?"
"네. 기대하던 날이 드디어 왔네요."
"너무 들뜨진 말라고. 아직 어디로 가야하는지도 모르면서."
"아하하하..."


그렇게 계속 걷고걸어 도달한곳은 햇빛이 만연한 북녘골 수도원이었다. 그는 낭랑한 웃음을 짓고서 수도원입구에 고고히 서있는 사내를 향해 고개를 주억였다. 치안대장 맥브라이드. 어느정도 나이가 있어보이는 그는 자신의 갈색빛 수염을 대담히 만지며 웃었다. 그리고는 호박빛 머리카락의 사내, 막 성기사로서의 정식임무를 받고 여행길에 오를 그, 아우덴티아 아스틴을 맞이해주었다. 시작을 축복하듯 쏟아지는 빛 아래서 아스틴은 명랑하게 웃었다. 언제나처럼 미소짓는 그에게 치안대장은 잠시 신중한 눈길을 보냈지만 곧 털털히 웃으며 그의 알수없는 앞길을 격려하는 말들을 늘어놓았다.

"자네가 가야하는곳은 희망의 빛 예배당일세."
"동부왕국 북동쪽에 위치한 .. 네. 은빛여명회의 거점말이지요?"
"지금 시기는 바쁘다. 북쪽에 넘쳐나는 언데드들을 진압해주고있는게 그들이야. 너도 성기사가 되었으니 당장 전선에 나가지않는다고해도 분명 가볍지않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것이야."

치안대장의 사뭇 진지한 눈빛이 아스틴의 청명한 눈동자와 마주쳤다. 그 눈빛속에 들어있는 주의와 걱정이, 아스틴을 살짝 놀라게했다. 

"걱정해주시는군요."
"당연하지."

어느정도의 정적이후 아스틴은 밝게 웃었다. 걱정할것 없다는것을 증명하듯. 막 내려앉은 빛이 그런 아스틴을 격려하며 비추었다. 치안대장은 약간 못마땅한 표정을 했지만 이윽고 작게 웃으며 아스틴의 단단한 등을 치며 말했다. 아스틴은 갑자기 느껴지는 등의 충격에 크게 소리질렀지만 곧 다시 웃음을 되찾았다. 기뻤다.

"몸 성하게, 잘 갔다와라. 유명한 기사가 되서 돌아와야한다!"
"마치 제 아버지같으시네요."
"로자크보다 더 심한 아버지가 되어줄 수 도있다!"
"으악!"
"빨리 가!"

육중한 갑주가 덜걱일 정도로 등을 때려맞은 아스틴이 낭랑히 웃으며 준비된 '은빛바람'의 등에 올랐다. 이 아름다운 흰색 갈기의 명마는 그와 함께하게 된것이 기쁘다는듯 울었고 아스틴 역시 이런 파트너와 함께여서 기쁜듯 은빛바람의 목을 정성스레 쓰다듬길 반복했다. 그렇게 얼마지나지않아 둘은 가야할곳으로 천천히, 하지만 조금은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조용히 따라가는것은 빛인것인지, 아니면 어둠인 것인지. 아무도 알수없는 가운데 아우덴티아 아스틴의 여정은 막 오름길에 오른것같았다.